소년은 어느새 남자의 어깨를 갖게 되었다. 올 봄, 후지TV 드라마 <라스트 신데렐라>에서 마성의 연하남을 연기하며 일본 여성들의 가슴에 벚꽃 태풍을 불러 온 미우라 하루마. 아역으로 데뷔해 영화 <연공>과 <너에게 닿기를>로 소녀들의 첫사랑이 되었고, TBS 드라마 <블러디 먼데이>에서 인류의 미래를 걸고 테러리스트에 맞섰으며, 화장품 CF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젊은 배우들과 함께 걸었다. 그는 ‘산뜻함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순정만화 주인공에 위화감 한 조각 없는 미소로 웃었지만, 동시에 쉽사리 말할 수 없는 고민과 싸우며 자랐다. 그리하여 마침내 더 많은 풍경을 보고 싶어 더 높은 자리를 꿈꾸기 시작한 스물넷의 미우라 하루마를 만났다.
촬영이 시작되자 당신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스위치가 켜졌다고 동행한 스태프가 말해주던데, 한국에서 촬영한 소감이 어떤가요?
여러 패턴으로 촬영할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스타일링도 일본에서 별로 한 적 없는 걸 시도해주셔서 새로운 저를 발견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네요. 오늘 촬영에서도 느꼈지만 한국은 어떤 테마에 맞추어 세계관을 드러내는 힘이 강한 것 같아요.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몸짓이나 손짓만으로도 스태프의 열의가 굉장히 강하게 전해져서 저도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지난 8월에도 한국에 와서 뮤지컬을 보고 갔죠.
조승우 씨가 나온 <헤드윅>을 봤는데 굉장한 파워를 느꼈어요. 좀처럼 볼 수 없는 사고도 있어 더 기억에 남아요. 갑자기 조승우 씨 마이크 소리가 안 나왔는데, 처음에는 연출인가 생각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대처하시더군요. 조승우 씨가 아카펠라로 노래했는데 그게 정말 좋았어요. 그럴 때 당황하지 않는 건 정말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돌발 상황 속에 관객을 내버려두지 않고 다시 무대의 세계로 끌고 오는 힘이 있다는 거죠.
<라스트 신데렐라>의 마성의 연하남 히로토로 연상의 여성들에게 한층 더 사랑받게 되었어요.
언론의 반응을 듣거나 주위 스태프, 친구들로부터 “재밌어!”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걸 느꼈어요. 평소에 그다지 연락하지 않았던 사람이 드라마를 본 뒤 “꺄악!” 이라는 한 문장만 있는 문자를 보낸다거나 하는 일도 있었구요.(웃음)
히로토는 실제 나이와 비슷한 역이었는데 자신과 닮은 점이 있었나요?
제게는 상당히 새로운 시도였어요. 일단 섹시한 매력을 드러내는 게 중요한 역할이었죠. 매 회마다 벗어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니까.(웃음) 좋은 타이밍에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올해 2월까지 극단 신칸센의 <ZIPANG PUNK〜고에몬 록 III>이라는 뮤지컬을 하면서 보여주는 힘이라고 할까,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을 꺼내는 걸 배웠어요. 그 작품을 끝내고 ‘파워 업’ 된 시기에 <라스트 신데렐라>를 하게 돼서 히로토를 잘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5살 연상의 사쿠라(시노하라 료코)에게 거짓말로 접근했다가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감정을 시청자에게 납득시켜야 했는데, 연기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뭔가요?
히로토는 비록 거짓말로 여자를 속이지만 자신의 꿈인 BMX에 있어서는 진지한 사람이에요. 경기 연습을 할 때는 정말로 거짓 없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히로토와 사쿠라의 관계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을 진심으로 즐기는 걸로 보였으면 했어요. 보는 사람이 ‘아, 부럽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대화의 톤이나 리듬을 의식했어요. 저 역시 이런 관계, 이런 순간이 있다면 좋겠구나 생각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츠마부키 사토시, 오구리 슌, 에이타와 함께 한 2009년 uno ‘FOG BAR’ 광고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요. 막내 티가 역력했던 그 때와 비교하면 완연한 어른 남자가 되었네요.
그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건 정말로 기뻤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마치 꿈같은 기획이었죠. 첫 로케이션 촬영지였던 런던도 처음 가는 것이었고 광고 콘셉트도 독특해서 현실에서 벗어나서 마치 환상 속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 선배들처럼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했는데, 얼마 전 인터뷰에서 “배우로서 좀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고 이야기했더군요.
여러 역할을 맡겨주시고 여러 곳에서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 한국에서 일을 하는 것을 비롯해 세계로 나갈 기회도 점점 많아지면서 새로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게 많아졌어요. 얼마 전에도 <캡틴 하록>으로 베니스 영화제에 다녀왔는데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여러 곳에 가서 다양한 연기를 하고 새로운 경치를 보고 싶어요. 물론 기가 죽는 일도 있을 테지만 그걸 무서워하기보다 여러 사람들에게 제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요. 아시아는 물론이고 기회가 된다면 할리우드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도 품고 있어요.
베니스 영화제에서 레드 카펫을 걸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최근 일을 하면서 그다지 긴장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그 날 차에서 내려서 첫 열 걸음 정도는 정말로 다리가 후들거렸어요.(웃음) ‘아, 정말로 레드 카펫을 걸었구나!’라는 감각이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어요. 이번에는 성우로서 참여했지만 다음에는 제가 살아 움직이는 작품으로 다시 그 레드 카펫을 걷고 싶어요.
영화 <너에게 닿기를>의 카제하야 같이 상큼한 순정만화 주인공도 연기했지만 <도쿄공원> 같은 영화에서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대학생이 되기도 했는데 어느 쪽이 더 어려웠어요?
평범한 역할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도쿄공원>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자주 말했던 게 “매력적으로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였어요. 오해받기 쉬운 말일 수 있지만, 반짝반짝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카제하야 같이 산뜻하고 밝은 이미지로 보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도쿄공원>은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아오야마 신지 감독님의 작품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고 공부했어요. 평소 제가 연기하는 대사의 템포 같은 걸 고쳐보기도 했고요. 최대한 평소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말투를 쓰려고 했어요.
tvN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에 출연한 미즈타 코우키 씨와 동갑내기 친구라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또래 친구들과 만나면 주로 뭘 하나요?
1년 전만 해도 밤에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하는 일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자주 만나지 못해요.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고 요즘은 시간이 나면 해외에 가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거나 하는 일이 많네요. 코우키와는 지금도 친해요. 시부야의 극장에서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하고 있어서 며칠 전에 보고 왔어요. <이웃집 꽃미남>에서 코우키가 처음 등장할 때 마치 산타 할아버지처럼 나오는 걸 보고 ‘이 녀석 굉장히 귀엽네!’ 라고 생각했어요.(웃음) 한국 작품은 그가 저보다 선배네요.
평소에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나요?
봉준호 감독님을 굉장히 좋아해요. 한 달 전에 <괴물>을 봤는데 한강이 엄청 무서웠어요.(웃음) <살인의 추억>도 좋아해요. 저 역시 ‘정말 범인이 잡히지 않은 거야?’ 라는 분한 마음이 들더군요. 얼마 전에 대담을 함께 한 박신혜 씨가 출연한 영화 <7번방의 선물>도 보고 울었어요. 자막 없이 한국어로 봤지만 감정이 충분히 전해졌어요. <이웃집 꽃미남>에서 봤을 때도 박신혜 씨는 굉장히 심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요. 실제로 만나서 눈을 보니 이 사람은 좋은 연기를 할 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설득력이 있는 눈을 갖고 있어요.
박신혜 씨도 아역부터 시작해 멋진 여배우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네요.
어린 시절에 연기를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라든지 고민하고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잘 이겨낼 수 있었다거나 하는 게 서로 닮았더군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함께 연기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어떤 고민들로 괴로웠던 건가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어요. 연기는 물론이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원래도 능숙한 편이 아니었지만 일이 많아지고 바빠지면서 더욱 힘들어졌죠. 당시 도망가고 싶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절 그냥 좀 내버려둬 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물론 축복받은 상황의 소중함을 몰랐던 미숙한 마음이었다는 걸 지금은 잘 알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슬럼프를 통해 얻은 것도 있나요?
이제는 그런 상황에 빠져들 것 같은 순간이랄까, 이대로 두면 위험하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그럴 때 뭔가 열심히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마음을 추슬러야지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지금은 일에 열의를 갖고 있는 스스로를 느껴요. 좀 더 위를 보고 싶다고 할까 더 멋진 경치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지금은 괜찮아요.
예를 들어 어떤 풍경을 펼쳐지길 바라고 있어요?
얼마 전에 친구가 이런 말을 했어요.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이면 너 서른 살이지? 그 나이면 배우로서도 전성기잖아. 일도 왕성하게 하고 굉장히 많은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거라고. 꿈이 이뤄질지도 모르고. 뭐든 이런 저런 것들을 기대하고 생각할 수 있는 거야.”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앞날에 희망을 갖고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세대라는 거죠. 일본 언론에서는 저희에게 사상성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해요. 실제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부분이 눈에 띄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가 찬스의 세대라고 생각해요.
‘찬스의 세대’라는 표현이 멋지네요.
제 또래 중에 지금 힘들고 우울한 사람이 많죠.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다거나 일자리가 없다거나 당장 눈앞에 닥친 어려운 것들이 많겠지만 생각을 좀 바꿔서 밝은 쪽을 보면 좋겠어요. 어른들, 선배들도 혼내기만 할 게 아니라 희망에 찬 이야기를 던져준다면 좋지 않을까요?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제대로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