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선생이다 산문집 황현산 한 번도 얼굴을 실제로 뵌 적이 없고 말하는 육성을 들은 적도 없건만, 저절로 ‘선생’이라는 호칭이 떠올랐다. 황현산 선생은 제목을 통해 라고 말했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 그가, 선생이다. 이 산문집은 프랑스 현대시를 연구하는 불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로 활동한 황현산 선생이 2000년대 초엽 국민일보에 그리고 지난 4년간 한겨레에 실었던 칼럼을 엮은 책이다. 그는 ‘내가 품고 있던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더듬어내어, 합당한 언어와 정직한 수사법으로 그것을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딱 그대로의 책이다. 예순 아홉이라는 나이가 새삼스러울 만큼 현실 문제를 날카로운 눈으로 보고 이에 합당한 입장을 가지며, 단호하지만 또한 아름다운 ..
정해진 대본대로 살지 않는 남자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김태훈의 책 의 추천사에 ‘거침없되 공격적이지 않고 경쾌하되 가볍지 않다’고 김태훈을 평했다. 김태훈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진의 이 평가가 그에 대한 가장 적확한 표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당황하실 때도 있나요?”라고 묻게 될 만큼, 김태훈은 막힘없이 말한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는 말들은 물론 인터뷰 질문에 대해서도 주저 없이 답을 내놓는다. 단순히 ‘달변가’ 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쉬운 평가다. 수학 문제집이고 영어 사전이고 다 팔아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던 고등학생 시절을 거쳐, 스스로가 가엾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뜨겁게 청춘을 던져 열혈 운동권 학생으로 대학 시절을 살아냈던 그는, 지금도 코브라..
사진이라는 아득하고도 새로운 시간의 화면들 박물관은 지루하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박물관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옛날 옛적 가야국의 수도였던 도시에서 자랐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위치한 박물관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딱히 싫은 건 아니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이나 단체 활동으로 박물관을 들릴 때면 별 불만 없이 묵묵히 유리관 너머의 도자기나 장신구 같은 걸 흥미롭게 보곤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단체 여행 코스에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니라면 제 발로 찾아갈 생각이 들진 않았고, 출입문을 나서면 기억에서 흐려지는 곳, 그게 박물관이었다. 말 그대로 지식의 보고(寶庫)며 의미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오늘은 심심한데 박물관이나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지는..
새 길 위에 선 멜로의 거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허진호 감독 허진호 감독을 만나기 전, 그가 단정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과장하지 않은 문장을 차분한 음성으로 말하는 허진호 감독은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하는 그의 영화 , 의 담백함과 닮았다. 하지만 사랑을 걸고 은밀한 게임을 벌이는 영화 에 떠다니던 묘하게 달뜬 기운도 의 간지러운 명랑함도 그가 가진 색깔 중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주 작품으로 인사한 건 아니지만 영화감독이라는 직함 외에 다른 것을 떠올리기 어려웠던 허진호 감독이 이번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오는 8월 14일에 개막하는 제 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가 있고, 음악이 있고, 바람이 있고, 물이 있는 축제..
처음 보는 도쿄의 표정 도시 인문 에세이 강상중 10년 전 태어나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일본 도쿄에 갔다. 먼동이 희붐하게 밝아오던 닛포리에서 먹었던 고로케의 식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후로도 여러 번 도쿄를 찾았고, 1년 동안 머물며 외국인 노동자로 살기도 했다. 남들보다는 아니라도 남들만큼은 도쿄를 안다고 생각했다. 서점에 가득 쌓인 도쿄 여행 에세이에 큰 감흥을 받지 못 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강상중의 는 너무 익숙해서 다소 지루해진 도쿄에 새로운 설렘을 안긴다. 새로운 핫 플레이스나 숨은 명소를 알려줘서가 아니다. 긴자, 하라주쿠, 롯폰기 힐스 같이 몇 번이고 가 본 곳들이지만 저자는 슬쩍 비껴 선 시선과 오래 품은 사색으로 낯익은 얼굴의 낯선 표정을 보여준다. 강상중은 일본의 한복판에..
최근 페이스북에서는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의 발언을 다룬 기사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름만 보면 일본인일 것 같은데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고, 명백한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이 신기한 것. 사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지난 2003년에 귀화를 한 한국인이자, 지난 15년 동안 독도 문제를 연구한 독도 전문가다. “나는 반일주의자가 아니다. 한일 우호를 간절히 원하는 입장에서 한일 간에 가시가 되어 있는 독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호사카 유지 교수는 누구보다 일본을 잘 알고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한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 사료들이 증거로 남아 있음에도 이를 숨기고 왜곡하며 도발해왔다. 이런 의도를 분석하고 반박해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