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야기하면, 박물관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옛날 옛적 가야국의 수도였던 도시에서 자랐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위치한 박물관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딱히 싫은 건 아니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이나 단체 활동으로 박물관을 들릴 때면 별 불만 없이 묵묵히 유리관 너머의 도자기나 장신구 같은 걸 흥미롭게 보곤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단체 여행 코스에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니라면 제 발로 찾아갈 생각이 들진 않았고, 출입문을 나서면 기억에서 흐려지는 곳, 그게 박물관이었다. 말 그대로 지식의 보고(寶庫)며 의미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오늘은 심심한데 박물관이나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박물관 취재 임무를 받았을 때 설렘보다 ‘이걸 어쩌지’ 하는 생각이 먼저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인생의 지혜 중 하나인 ‘뭐든 일단 해보면 다르다’는 걸 이번에도 역시 실감했다. 한국카메라박물관 덕분이다.
또 한 번 솔직해지자면, 카메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워낙 귀찮아하는 성격 탓에, 또한 아무리 예쁜 걸 봐도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지 않을 걸 스스로 아는 탓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 소유의 디지털카메라를 가진 적이 없다. 카메라에 관심이 없지만 또 어디서 본 건 있어서 10여 년 전엔 로모 카메라를 샀다. 정작 사고 나선 무거워서 별로 들고 다닐 일이 없었다. 그래도 예쁜 장식품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니 아깝진 않았다. 그러나 슬슬 나도 ‘디카’라는 걸 사야 하나 싶던 무렵에 고맙게도 스마트폰이라는 게 세상에 등장했다. 스티브 잡스 만세!
마호가니로 만든 카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한국카메라박물관 탐방은 매우 즐거웠다. 특히 지금 열리고 있는 ‘세계 목제카메라 특별전’에 전시된 오래된 카메라의 독특한 아름다움 덕이다. 고급 가구의 재료로 쓰인다는 마호가니 목재로 정교하게 짜 맞춘 목제카메라. 롤필름을 넣을 수 있도록 나무를 둥글게 깎아 마감한 부분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수천 픽셀을 자랑하는 요즘 카메라 입장에서는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초창기 카메라의 귀여운 매력에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컬러 필름이 만들어지기 전, 카메라 안에 흑백 필름을 넣고 녹색, 적색, 파란색 필터를 넣어 한 번에 찍은 다음 컬러 사진을 만들어내는 카메라가 있었다.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온갖 효과를 더해 소위 ‘어미, 아비도 못 알아보는’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요즘과는 다른 옛 과거의 사진기인 것이다. 열다섯 개의 렌즈가 달려 있어 한 번에 우표 크기의 증명사진 열다섯 장을 한 번에 찍을 수 있는 카메라도 있다. 지금은 모두 렌즈 속에 들어가 있는 조리개를 일일이 꽂아서 돌리거나, 기요틴이라는 이름의 단두대 원리로 만든 셔터 장치 등 아날로그 부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세계 목제카메라 특별전’에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와 일본, 베트남 등 세계 각국의 목제카메라가 나라별로 전시되어 있다. 당시 식민지를 많이 거느리던 영국은 그 덕에 식민지의 좋은 목재로 예쁜 카메라를 많이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전시장 가장 안쪽에는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도 있다. 몸체를 잘 살펴보면 ‘부산, 조선’이라고 적혀 있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
사진을 찍는 사람,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 사진을 만들어내는 카메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한, 아니 결과만 중요한 것이 당연한 요즘 세상에서 카메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물론 많이 알아야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더 알면 더 깊이 좋아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런 이유가 아니라도 한국카메라박물관을 찾으면 좋을 이유는 또 있다. 사실 이번 박물관 탐방이 좋았던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카메라박물관은 김종세 관장의 개인 소장품으로 만든 곳이다. 그는 30여 년간 수집한 3,000여 점이 넘는 카메라와 6,000여 점의 각종 렌즈 그리고 유리원판과 필름, 초기 환등기, 인화기, 각종 액세서리 등 무려 15,000여 점의 소장품으로 박물관을 만들었다. 이 박물관은 세계 개인 카메라박물관 중 가장 많은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본인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본인 소관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시대극에서나 보던 커다란 목제카메라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는, 누가 시킨 것도 돈을 준 것도 아니건만 그저 카메라와 렌즈를 좋아한 평범한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된 것이다.
김종세 한국카메라박물관장 인터뷰
한국카메라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당연히 국가에서 운영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이 설립해서 운영하는 게 믿기지 않는 수준인데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어릴 때부터 사진을 좋아했어요. 카메라 자체에 대한 관심도 있지만 아무래도 렌즈 때문입니다. 각 회사마다 해상력이나 색의 표현력 같은 게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하다 보니 결국 하나둘 사 모으게 된 거죠. 어느 정도 모이고 난 뒤부터는 박물관을 만들 생각이 들더라구요. 1993년도였는데, 당시에 우리나라에는 카메라박물관이 없었어요. 그런데 인접 국가들은 있었거든요. 일본이야 워낙 카메라 생산 대국이니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태국에도 카메라박물관이 있었어요. 우리나라에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그 때부터는 박물관에 필요한 카메라를 모으게 되었죠.
2층의 제2전시실에 있는 ‘콘탁스Ⅱ 라이플(Contax Ⅱ Rifle)’은 유일하게 이곳에만 있는 카메라더라구요.
1936년에 베를린 올림픽 취재를 위해 특별 주문 생산한 것입니다. 당시 총 4대 생산했거든요. 그중에서 하나는 공식적으로 없어졌다는 기록이 있고 나머지 둘은 행방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공개된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건 우리 박물관에 있는 게 유일해요.
총대와 결합된 카메라의 모양이 굉장히 특이하고 예뻐요.
군대 생활을 한 사람은 잘 알 텐데 소총을 발사할 때 숨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기는 원리인 거죠. 올림픽 취재용이니까 멀리서 움직이는 걸 촬영해야 하잖아요. 멀리 있는 물체를 1/125 표준 렌즈로 찍으면 너무 작게 찍혀요. 그래서 망원 렌즈를 사용해서 멀리 있는 걸 당겨서 찍는데 이때는 셔터 속도가 상당히 빨라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흔들림 현상이 생기는데 그걸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어깨에 견착하고 총대 위에 부착된 방아쇠를 당기면 그 선을 통해 셔터를 누를 수 있게 고안되어 있는 거예요.
3,000여 점이 넘는 카메라와 6,000여 점의 각종 렌즈 등이 있는데 이게 모두 관장님 개인 소장품이라면서요.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들었을 텐데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아니요. 제가 오히려 왜 반대를 하지 않았냐고 가족들에게 얘기합니다. 그때 바가지를 팍 팍 긁었으면 다시 생각을 해서 이걸 만들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웃음) 돈도 돈이지만 시간을 너무 많이 썼어요. 사실 나이가 들었으니 편하게 살 때도 되었는데 여기에 너무 푹 빠져서 보낸 게 좀 안타깝죠.
하지만 관람객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운 마음입니다. 사실 최근의 어린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 본 카메라가 이미 디지털카메라인지라 그것을 카메라의 전부로 알 수도 있잖아요.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아요.
상당히 고마운 이야기입니다. 사실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진을 찍는 인구 자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어요. 아마 우리 인구의 1/10 이상은 사진에 어느 정도 심취해 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그 중에 카메라의 메커니즘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확실히 사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아도 기기로서의 카메라에 관심 두는 사람은 대폭 줄어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사실 사진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카메라에 대해서 상당히 어렵게 생각을 해요. 당연히 일반인들은 더 어렵죠. 우리가 국립박물관 같은 데 가서 쭉 늘어서 있는 도자기를 봐도 전문가가 아니면 다 똑같아 보이는 거랑 마찬가지죠.
1층에서는 상설 전시가 열리고 2층에서는 특별 전시를 하고 있더군요. 이런 특별전은 1년에 몇 번 정도 하시나요?
처음 박물관을 개관했을 때는 1년에 3, 4번씩 했는데 특별전을 했는데 이제는 1, 2번 정도 합니다. 횟수가 주는 게 조금씩 꾀가 나는 것 같아요.(웃음) 특별전을 하는 건 자료 정리를 해서 도록으로 만드는 게 주요 목적이죠. 사실 우리나라는 카메라에 대한 책자가 거의 없어요. 기기의 메커니즘이 어떻고 언제 만들어졌고 하는 내용의 자료는 거의 전무하죠. 그래서 도록을 만들 때 참고서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신경 쓰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책 한 권을 만들고 나면 박물관 쪽으로는 쳐다보기도 싫은 마음이 들어요.
목제카메라의 희소성이 대단한 것 같아요.
지금 전시된 게 상당히 오래된 카메라들이에요. 1920, 1930년대까지만 해도 목제카메라들이 많이 만들어졌어요. 워낙 생산연도가 오래된 카메라들이다 보니 자료를 찾아내고 정리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목제카메라 특별전을 생각한 건 10년도 더 전인데 계속 미루다가 이번에 하게 된 거죠. 지금부터 100년 전만 하더라도 카메라는 엄청나게 고가였죠. 1930년대, 194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라이카 카메라 한 대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가회동의 이삼십 칸짜리 집 한 채 값이었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중동에 다녀온 기술자나 월남전에 참여한 군인들이 개인으로서 카메라를 사용하기 시작했죠.
목제카메라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바뀐 건 언제부터인가요?
알루미늄 합금이 카메라에 도입되기 시작한 때가 1890년대인데 그때가 선박을 이용해서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기와 맞물렸어요. 그 후 점진적으로 카메라가 작아지게 되죠. 1988년에 미국의 코닥사에서 롤필름을 만들었어요. 요즘 모두가 편하게 쓰고 있는 바로 그 롤필름이죠. 이것의 발명으로 필름 홀더가 따로 필요 없게 되니까 당연히 카메라가 작고 가벼워질 수 있게 된 겁니다. 세상의 모든 발전에는 소비하는 사람들이 바탕이 되는데,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상황이 되면서 들고 다니는 카메라가 함께 발전하게 되죠. 특히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결국 화학의 발전 덕이에요. 제일 중요한 감광제가 발전하면서 감도가 좋아지고 빛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까 빛의 양을 조절하는 조리개도 만들어지고, 빛의 통과를 조절하는 셔터 장치도 만들어진 거죠.
이번 ‘세계 목제카메라 특별전’을 찾는 관람객이 기대해도 좋을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단 카메라의 발전사를 볼 수 있죠. 초창기 카메라가 각 나라별로 대부분 모여 있어요.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것이 제일 많아요. 그리고 목제로 만든 카메라는 공예품으로서도 상당히 가치가 있어요. 사실 카메라가 얼마나 정밀한 기기입니까. 그런데 이걸 목제로 만든 거예요. 목제는 변형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데 이걸 정교해야 하는 카메라에 적용하면서 뒤틀림이 없도록 고안한 것들이 상당히 훌륭해요. 우리나라의 청자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장인정신을 갖고 공을 들인 참 예쁘고도 멋진 카메라를 볼 수 있어요.
- 관람료: 노인(만 65 세 이상) 4,000원, 성인(만 18~64 세) 5,000원, 청소년(만 13~17 세) 4,000원, 어린이(만 12 세 이하) 2,000원.
- 개관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3월~10월), 오전 10시~오후 5시(11월~2월). 매주 월요일, 명절 휴관.
- 현재 전시 내용: 제1전시실 ‘라이카 모방카메라 특별전’, 제2전시실 ‘세계 목제카메라 특별전’, 제3전시실 ‘김종세 갤러리 <붉은 다락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