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이스북에서는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의 발언을 다룬 기사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름만 보면 일본인일 것 같은데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고, 명백한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이 신기한 것. 사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지난 2003년에 귀화를 한 한국인이자, 지난 15년 동안 독도 문제를 연구한 독도 전문가다.
“나는 반일주의자가 아니다. 한일 우호를 간절히 원하는 입장에서 한일 간에 가시가 되어 있는 독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호사카 유지 교수는 누구보다 일본을 잘 알고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한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 사료들이 증거로 남아 있음에도 이를 숨기고 왜곡하며 도발해왔다. 이런 의도를 분석하고 반박해온 그의 연구는 학자로서 당연한 윤리인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이 나라를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오랫동안 일본에서는 적으로 비난받고 한국에서는 진심을 의심받았다. 하지만 발음만 다소 어눌할 뿐 막힘없는 한국어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독도 영유권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는 호사카 유지 교수와 마주하면서, 그와 우리 사이에 인연의 다리를 놓아준 누군가에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많이 바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활동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세종대에서 ‘역사와 한국의 영토’라는 독도 관련 강의와 ‘한일교류사’ 강의를 하고 있고, 한일관계나 독도 문제에 대한 외부 특강도 많습니다. 내일도 특강 차 제주도에 갑니다. 요즘은 독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협력하고 있습니다. 쉴 새가 없어서인지 요즘 눈이 많이 나빠졌어요.(웃음)
요즘처럼 한일 관계가 경색된 시절에는 교수님 조언을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나요?
제가 속한 독도종합연구소에서는 주로 일본의 발언이나 자료를 분석해서 논리적으로 극복하는 작업을 합니다. 독도 연구를 위해 만든 연구소지만 요즘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확대되었습니다. 한일 관계를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고 일본이 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필요가 있었죠. 최근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하 하시모토 시장)의 발언을 철저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여성들은 일본군들을 쉬게 하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발언에 대해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고 분노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사실 하시모토 시장은 일본에서 차기 수상이 될 수 있는 인물로 거론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높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발언에는 상당한 무게가 있고 일본 정계에 미친 영향도 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위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유력 정치인들의 발언을 통해 그들이 목적하는 바를 깊이 분석 해야만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하는 것을 보고 참담했습니다. 일본의 우경화가 가속되는 것이 많이 걱정스러워요.
아베 내각은 자민당 안에서도 우파입니다. 일본에서 우파가 힘을 갖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혁신이 실패한 탓이 크죠. 민주당이 3년 반 정도 집권을 했는데 국민들이 굉장히 실망을 했어요. 현재 일본은 이념보다 경제가 먼저예요. 그걸 알고 있는 아베 내각이 아베노믹스라는 급진적 경제 정책을 들고 나온 거죠. 경제를 먼저 살린 다음 자신들의 이념에 입각한 헌법 개헌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 전략이 대충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베노믹스가 지금은 약간 휘청거리는데 처음 3, 4개월은 굉장히 성공했어요. 계속 떨어지던 주가가 한 때는 55% 이상 올라갔으니 굉장한 일이죠. 지금 약간 떨어졌다고 해도 40%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반가울 수밖에요.
정치인들의 극우적 태도에 일반 국민들도 점점 휘둘리거나 무감각해지는 것 같아요.
평범한 일본 국민들은 아베 신조 총리의 우익 발언에 대해서 자신들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일반 서민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정권이면 우파로서 좀 이상한 얘기를 해도 그냥 넘어가는 거죠. 그리고 어차피 독도나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다른 정권도 끝까지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경제를 성장시키는 자민당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란 덕에 아베 정권의 헌법 개정 노림수가 약간 물 건너 간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준 건가요?
일본 내에서 완전한 개헌 지지 세력은 일본 유신회와 자민당, 이 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자위대가 아니라 군대를 만들겠다는 9조 개헌이 워낙 논쟁이 되니까 지금은 헌법 96조 쪽으로 말을 바꿨어요. 이건 헌법 개정 절차에 대한 사항을 바꾸는 거예요. 예를 들면, 국회의원의 2/3 이상이 헌법 개정이 찬성해야 한다는 걸 1/2이나 3/5로 바꾸겠다는 거죠. 이는 다른 세력도 크게 반대하지 않거든요. 그렇게 먼저 96조를 바꿔서 다른 논의로 옮기려는 게 아베의 전략이에요. 여기에 대해서도 확실한 지지 세력은 일본 유신회였는데 공동대표인 하시모토 시장의 위안부 발언으로 여성들의 표가 완전히 도망갔습니다. 이대로 가면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 유신회와 자민당이 합해서 2/3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상황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신사적으로 움직였어요. 전쟁범죄라고 할 수 있는 분명한 증거들이 있는데 그걸 활용하지 못 하고 있어요.
분명한 증거들이 있군요.
하시모토 시장이 위안부와 관련해 밝힌 성명서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그의 발언을 분석했는데, 그는 군대의 관여를 분명하게 인정했어요. 그러나 국가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죠. 그런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군대가 하는 일에 대해 국가가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되고, 혹시 몰랐다고 하더라도 책임은 국가에 있는 거죠. 당연히 일본이라는 나라가 사죄를 해야 하는 겁니다. 그 성명문이 다 공개되어 있어요. 물론 일본어라 분석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제가 해본 거죠. 우리는 이런 걸 알아야 해요. 나와 있는 자료를 갖고 추궁하면서 국가와 군대의 관계는 뭐냐는 질문을 해서 궁지로 몰 수 있는 거죠. 퍼포먼스나 감정적인 시위만큼 객관적인 자료로 논리적인 대응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독도 문제에 있어서도 교수님 연구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감정적으로 외치는데 그치지 않고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논리를 구축하는 것이죠.
물론 독도는 우리 것이니까 일본의 도발에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일리는 있어요. 하지만 알고 있다는 건 무기가 됩니다. 무기가 없으면 일본이 본격적으로 나올 때 당할 수 있어요.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이 민간 업자들이 한 것일 뿐 국가의 책임이 없다고 하면 분개만 할 게 아니라 반박 자료를 들이밀어야 하는 거죠. 애매하게 도망가는 게 일본의 전략이니까요. 그들이 도망 못 가도록 막을 수 있는 게 논리라는 무기예요.
일본이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 자주 들고 나오는 게 국제사법재판소에 판결을 맡기자는 주장인데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재 국제사법재판소는 한 쪽이 단독 제소해도 상대국이 거부하면 성립되지 않아요.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압력으로 우리가 거부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어요. 우리가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면서 일본이 주장하는 것에 충분히 대답을 못 할 때는 일본의 논리가 한국을 압도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죠. 그래서 일본은 지금 미국을 설득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도요타 같은 일본 기업은 차를 구입하면 나눠주는 팸플릿에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내용을 실었어요. 사실 미국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원할 뿐 독도나 센카쿠 열도가 실제 누구의 것인지는 신경 쓰지 않아요. 이렇게까지 싸운다면 세계 평화를 위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는 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물론 우리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도 이긴다고 얘기하지만 논리와 진실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건 정치니까요.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되면 일단 독도는 중립 지역이 됩니다. 그 기간 동안 공동 관리를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기존의 비밀 시설 같은 게 완전히 노출되는 겁니다.
연말에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던데요.
연말쯤에는 가능할 수 있어요. 지금은 일본 정권이 독도나 센카쿠 열도 문제에 대해서 별로 거론하지 않고 있어요. 시기를 보는 거죠. 아베 내각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고 헌법 개정 절차를 바꾸어도 궁극적으로 군대를 만들려면 국민투표를 통한 국민들의 동의가 필요해요. 그 때는 영토 문제를 일으키는 게 가장 효과적이에요. 우리에게 군대가 없어서 중국과 한국한테 당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거죠.
7월 이후 다시 한 번 독도영유권 분쟁이 생길 수 있겠군요.
독도 문제를 크게 거론해서 당하는 척하면서 군대 문제로 연결시킬 가능성이 있죠. 하지만 그 사이에 아베 내각도 하시모토 시장의 경우처럼 위안부 문제로 휘청거리면 지지도가 엄청나게 떨어질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 기회를 활용하지 않으면 그냥 자민당이 대승할 거예요. 개헌 세력이 의석의 2/3를 가져가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논리적으로 확실하게 반박하고 이에 바탕을 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약자의 입장일 때는 감정적인 대응이 효과가 있어요. 하지만 이제 국제사회에서 G20 참가국인 한국을 약자로만 보지 않거든요. 과거에 우리가 침략을 당했고 피해국가니까 우리의 주장을 세계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가정이 완전히 무너진 거죠. 결국 대등한 입장으로 정확한 법적 논리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교수님께서 독도 전문가가 된 계기가 한 대학생의 질문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것이 1995년이었어요. 김영삼 정권 시절이었는데 근래의 독도 영유권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였죠. 당시 독도에 접안 시설을 만들었는데 일본이 이걸 반대해서 김영삼 대통령이 중국의 장쩌민 주석과 회담 중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한 게 문제가 되었어요. 그 때 수업에서 학생들이 제게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장난 반, 정말 알고 싶은 마음 반이었을 거예요. 그 때는 귀화하기도 전이었고 일본인이었으니 독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누구의 땅인지 관심도 없었고 모르니까 대답할 수 없었죠. 그래서 공부해서 대답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고 3년 정도는 깊이 연구를 안 했어요. 1998년에 세종대에 부임한 뒤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게 되었고 올해까지 15년 정도 독도 연구를 해오면서 독도는 한국 것이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죠. 혹시 그 학생들이 그 일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면 지금까지 열심히 대답해줬다고 느낄 거예요.
독도를 여러 번 방문하셨는데 실제로 그 땅을 밟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독도는 일곱 번 정도 다녀왔어요. 독도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 저는 상당히 운이 좋게도 맑은 날씨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한 번은 방송 촬영차 방문해서 4박 5일 정도 머물렀어요. 원래는 1박 2일 일정이었는데 비가 많이 오고 파도가 높아서 배가 뜨지 못 했어요. 덕분에 구석구석까지 다 볼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어려움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색안경을 낀 시선도 많았을 텐데 힘들진 않으셨나요?
우선 일본 입장에서 저는 완전히 적이죠. 매국노.(웃음) 일본에서는 지금도 제 발언을 굉장히 주목해요. 그래도 제 논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비판한 사람은 없어요. 특히 제가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는 걸 경계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제 논리가 다 알려지는 거니까. 일본 네티즌들은 대체로 그냥 욕을 써요. 괘씸한 놈이라는 거죠. 한국에서는 표면적으로는 다들 환영하죠. 하지만 의구심을 갖고 있어요. 왜 한국에 왔지? 사실은 일본 우익인데 자료 빼내려고 온 게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지금은 한국 정부도 저와 제 연구를 많이 활용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를 많이 감찰했어요.
대학에서는 공학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한일관계 연구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역사를 좋아했어요. 아버지께서 렌즈 제조업을 하셨는데 렌즈를 만들 때는 금형이 필요하니까 제게 공학부 진학을 권하셨죠. 하지만 전 철학이나 역사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교양학부 시절에 혼자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졸업을 한 뒤 아버지 회사에 다니기도 했지만 그건 일이었을 뿐 당시에도 정말로 흥미를 가진 건 일본 정계가 어떻게 돌아가나 같은 분야였어요.
한국으로 유학을 오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한국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가진 건 대학 때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해 알게 된 뒤예요.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일본에서는 절대 안 가르치는 내용이었으니까요. 주위에 재일교포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가 굉장히 자극적이었어요.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일본의 왕후를 죽인 건데 그러면 일본 사람들도 그 나라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언젠가는 한국말도 공부해서 한국인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일본이 왜 침략국가가 되었는지 궁금했어요. 당시 일본은 지금만큼 극우파가 부상하지는 않았어요. 자민당도 중도 우파, 보수 정당이었죠. 일본 전체가 아주 이상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왜 과거에 중국이나 한국에서 그토록 잔인한 짓을 한 것일까, 왜 미쳐버렸던 걸까가 궁금했습니다. 그걸 알기 위한 열쇠는 한국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재일 한국인 친구들과는 어떻게 교류하게 되신 건가요?
아버지 회사의 거래처에 재일 한국인이나 일본으로 귀화하신 사장님들이 많았어요. 사실 처음엔 일본어를 쓰시니까 일본 사람으로 알고 있었죠. 그 분들의 초대를 받아 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교류가 많았습니다. 한 번은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서 간 자리에서 한국 무용을 봤어요. 당시의 일본 무용보다 빠르고 역동적이라 훨씬 아름답더군요. 같은 동양 무용이라도 부채춤이나 북을 이용한 한국의 춤이 더 재밌었어요. 그런 영향이 있어서인지 어려서부터 한국에 관심이 있었고 한국인들과 친분을 쌓을 기회가 많았던 것 같아요.
과거 한류 붐의 영향으로 한일관계가 일시적으로 호전되었는데 다시 정치적인 문제로 한류마저 타격을 입기도 했어요. 이런 문화교류나 민간 차원의 노력이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을까요?
문화도 정치의 영향을 받아요. 타국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의 활동을 규제하지 않는 식으로 이용하기도 하죠. 지금 한류의 중심지였던 신오쿠보에서 매일같이 반한 시위가 벌어지는데 그게 보기 싫어서 사람들은 점점 그곳에 안 가게 됩니다. 엄청난 방해 행위인 거죠. 하지만 집회의 자유가 있다면서 내버려두고 있어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사실상 규제할 수 있는 법도 있는데 그걸 안 쓰는 거죠. 이건 정말 일본이 반성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귀화하신지 벌써 10년입니다. 한국인으로 살면서 한국 사회에서 느끼는 아쉬움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에는 세계화시킬 수 있는 좋은 내용들이 굉장히 많은데 아직 충분히 발굴되지 못 하고 있어요. 역사나 전통 문화의 우수성 같은 것이죠. 일본의 경우 닌자나 사무라이 같은 역사적인 캐릭터가 세계에 알려지면서 ‘무사도’라는 개념으로 통해 일본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1900년대 초 미국에서 <무사도> 라는 책이 발간되었는데 역대 미국 대통령들도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그 <무사도>의 기본이 된 것은 우리의 선비정신이에요. 성리학이 말하는 완성된 인간형에 칼을 차는 무사를 더한 것뿐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성리학이 일본에 많이 전해져 에도 막부의 중심 사상이 되었는데 그것을 토대로 무사도가 재정립된 거죠. 일본은 실체가 없는 것도 굉장히 포장을 잘 해요. 자기들 것이 아닌데 뺏어서 하기도 하죠. 한국은 그게 굉장히 약합니다. 우리 역사 속에 실존했던 훌륭한 사상가들,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편적인 인물로만 거론하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 사상사로 정리해서 세계에 알리는 것이 필요해요. 정신이 올바른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