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고수 유희열의 중원 출정기90년대 감성 돋는 오빠들이 예능으로 적을 옮기거나 슬쩍 얼굴을 비출 때마다 유희열의 이름은 늘 함께 거론되었다. 누군가에게는 90년대 고급가요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름이거나 심야 라디오의 황제지만, 그의 정체성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역시 ‘감성변태’. 2013년, 드디어 유희열이 예능의 중원에 정식으로 출격했다. 유재석에 필적하는 진행병을 보여준 MBC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도, 허지웅과 함께 ‘변태와 색마’ 콤비 플레이를 보여준 tvN <SNL 코리아>도 좋다. 하지만 그의 필살기가 보고 싶다면 Mnet <음악의 신>이 최고다. 존박에게 촛농을 떨어뜨리고 호피 하이힐에 코를 묻고 평온을 찾는 그의 얼굴에는 ‘불혹’의 평온함이 깃들어 있다. ★★★★
19금 비스포크 입은 신동엽의 만개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고 했다. 2000년대 예능의 대 격변과 함께 신동엽이라는 이름은 다른 많은 이들처럼 서서히 잊힐 줄 알았다. 하지만 신동엽이 보여준 부활은 천재가 성실하기까지 하면 얼마나 무시무시해질 수 있는가를 증명한다. 본인에게는 큰 상처일 사업 채무가 그를 소처럼 일하게 했지만 그 덕에 우리는 농염하게 만개한 ‘섹드립’을 만났다. 화룡점정은 역시 JTBC <마녀사냥>이다. 귓불은 새빨개질지언정 한 톨의 흔들림 없는 평온한 얼굴로 웃기고 음탕한 멘트를 던진다. 지난 20년 동안 뭘 입든 평균 이상으로 어울리는 신동엽이었지만 역시 그의 비스포크는 19금이다. ★★★★
풋내기 워너비를 좌절시킨 막장 마에스트로 임성한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에 막장을 아로새긴 임성한에게 불가능은 없다. 두 자리 수의 출연자가 ‘배틀 로얄’ 식으로 하차하고, “암세포도 생명이니 죽일 수 없다”는 대사로 우주적 휴머니즘을 설파하고, 동생이 부인에게 따귀 한 대 맞았다고 누나가 실어증에 걸리는 것도 ‘임성한 월드’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찮은 잔기술로 흉내를 내는 워너비 작가들과 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부처도 울고 갈 평정심에 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이런 호통도 임성한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그 어떤 논란에도 흔들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재석 사람들은 유재석을 사랑한다. ‘갑툭튀’ 루키의 선전과 부동의 1위가 몰락하길 바라는 숨은 욕망도 그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커다란 산 같던 강호동의 무릎이 꺾이고, 튼튼한 거선 MBC <무한도전>도 자주 휘청인다. 그럴 때마다 대중은 유재석의 안위를 걱정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유재석은 우리를 웃긴다.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을 인솔하고 KBS <해피투게더 3>에서 변함없이 깝죽대며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몸을 던진다. 어떤 자리는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만 지킬 수 있다. 여전히, 아직도, 유재석이 1인자인 이유다. ★★★
욕 팔아 인생역전, 김슬기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과 며칠은 감지 않은 떡 진 머리로 귀에 착착 감기는 육두문자를 내뱉다가 스타가 되다니. tvN <SNL 코리아>에서 내로라하는 스타 호스트보다 눈길을 끄는 건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무대를 휘젓는 조그만 처자, 김슬기였다. 물론 김슬기 이전에도 순발력 좋고 연기 잘 하고 쓸데없이 내숭 떨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김슬기가 ‘국민 욕동생’에 등극할 수 있었던 건, 좀 전까지 장화 신은 고양이의 청순한 눈망울로 올려다보다 순간 돌변해 속사포 욕지거리 래핑을 시전하기 때문이다. 작고 귀여운 몸집의 김슬기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욕은 위협적이지 않고 귀여우니까. ★★★
차기 한국관광공사 사장 후보, 샘 해밍턴처음엔 이태원을 반나절만 헤매면 몇 번이고 마주칠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점점 잘 생겨 보인다. 배우 콜린 파렐 닮았다는 말도 왠지 수긍이 간다. 웃기는 남자가 잘생겨 보이는 이론이 샘 해밍턴에게도 적용된 것. 그와 MBC <일밤> ‘진짜 사나이’는 서로에게 윈-윈이 된 아름다운 만남이다. 남의 나라에서 자국민도 꺼리는 군대에 굳이 제 발로 들어간 외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어리바리, 좌충우돌 ‘고문관’ 노릇도 귀엽게 용서가 된다. 호주 출신 외국인이 아니라 한 때 호주에서 산 적 있는 동네 오빠 같은 샘 해밍턴이 차기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
웃음의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판 유세윤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유세윤의 음주운전 자수 보도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사람은 진짜 ‘또라이’구나 이었다. 물론 칭찬이다. 음주운전과 자수,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유세윤을 끼얹자 ‘웃프다’의 완벽한 예시가 만들어졌다. ‘뼈그맨’이라는 수식이 말해주듯,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생을 내던지는 유세윤의 개그는 위태로운 만큼 위력적이었다. 어쨌든 불미스러운 일이라 이렇게 말하기 정말 미안하지만, 정말 웃겼다. 다만 자숙 후 복귀한 뒤로는 어쩐지 예전의 ‘똘기’가 희석된 것 같아 그게 참 아쉬울 따름이다. ★★★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김구라의 원천기술 김구라는 진짜 똑똑하다. 치고 빠질 때를 알고, 어디를 긁어줘야 하는지를 알고, 누구에게 숙여야 하는지를 안다. 오랜 무명으로 인해 몸에 새겨진 생존 본능이라서 더욱 무섭다. 이제 그의 인터넷 방송 시절을 거론하며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촌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점점 예의를 지키기보다 속 시원히 까발리길 원하는 시대정신의 수혜를 입었다 하더라도 김구라의 독보적인 원천기술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서서히 죽어가던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 산소 호흡기를 댄 것은 분명 그의 힘이다. ★★★
그 남자의 연관 검색어,‘심재철이 본 사진’ 예능인들, 긴장해야겠다. 이 나라에서 가장 웃기는 순간은 국회와 검찰에서 만들어진다. "스마트폰에서 성인인증 없이 성인사이트에 접근할 수 있는 실태를 파악하기 위함이었지, 의도적으로 누드 사진을 검색한 것이 아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누드사진을 검색하다 물의를 빚은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의 해명이었다.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심재철이 본 사진’이 가장 먼저 뜬다. 차라리 “누구나 가슴 에 누드사진 한 장 정도는 있는 거잖아요?”, “회사에서 월급도둑 안 해본 사람만 제게 돌을 던지십시오!”라고 했다면, 일말의 동정이라도 했을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