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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을 다시 보다.

2008년 11월, 나는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다 말았다. 그 때 나는 회사를 그만둔지 대여섯달 쯤 되었고, 초임 연봉 3800만원을 준다는 어느 회사의 최종면접에 떨어진 직후였다. 몇 부까지 보았던가. 왜 노희경 작가의, 표민수 감독의 이 드라마를 도중에 보다 말았던가, 그 이유를 이 겨울, 다시 보면서 떠올렸다.

나는 정지오가 너무 아프다. 그 때도, 나는 정지오가 너무 아파서 이 드라마를 볼 수 없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드라마다. 감독이 있고, 작가가 있고, 배우가 있다. 조감독도 있고, 연출부도 있고, 매니저도, 국장도 있다. 정지오에게, 드라마는 인생이다. 정지오의 후배이자 애인인 주준영은 드라마가 재밌어서, 드라마를 찍는 감독이다. 정지오는 주준영에게, 후배들에게 드라마처럼 살라고 이야기한다. 주준영은, 그리고 후배들은 정지오를 존경하고, 좋아한다. 그는 인간적인 선배이고, 인간을 표현하는 드라마 감독이다. 그의 곁에는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드라마를 쓰는 작가가 있고, 믿을만한 선배와 그를 믿는 후배, 동료들이 있다. 그들은 정지오를 사랑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정지오와 주준영이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는 드라마다. 정지오는 영화를 하고 싶었지만 매달 나오는 월급이 필요하다. 그에게는 시골에서 소 키우고 농사 짓는 부모와 넉넉하지 못한 누이가 있다. 그는 부모를 위해 월급을 차압당하고, 퇴직금을 중간정산한다. 그런데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주준영에게 정지오의 어깨에 지워진 짐은 보이지 않는다. 주준영은 일부러가 아니라, 정말 몰라서, 그깟 돈이야 또 벌면 되지 라고 이야기한다. 한편, 정지오는 주준영의 상처를 보지 못한다. 주준영은 경박하고 속물적인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존경했던 아빠의 외도를 믿을 수 없다. 그런데 정지오는 그녀에게 엄마를 이해하라 하고, 아빠에게 상처받은 그녀를 위로해주지 않는다. 

사실 이 드라마에는 정지오와 주준영 말고도 각자의 삶과 상처를 가진 많은 인물들이 있다. 주인공들만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음에도, 그녀들을, 그들을 이해하고, 연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 아니던가. 그런데 내게 <그들이 사는 세상>은 정지오의 드라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줄곧 정지오의 편이었다. 친구의 말처럼 그가 찌질한 모습을 보이던 순간에도, 나는 그의 편이었다. 단 한 순간에 정지오가 이해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일까, 생각했다. 같은 여자인 주준영이 아니라, 왜 정지오인 걸까. 정지오가 주준영을 매몰차게 차고, 잔인하게 외면했던 순간마저도 왜 난 그의 편인걸까. 충분히 사랑스럽고, 똑똑하고, 솔직한 주준영이 아니라 인간적이지만 비겁하고 찌질한 정지오인 걸까. 주준영이 정지오에게 던지는 모진 말을 들으면, 그녀가 그에게 어이 없이 이별을 통보받았다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음에도 굳이 꼭 어느 한 쪽의 편이어야 할 필요도 없건만, 정지오를 변호하고 주준영을 미워했다. 주준영은 영리하고 그림도 잘 찍으니까. 정지오보다 시청률도 잘 나올 거고 프리로 나가기도 더 쉬울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주준영은 정지오보다 부유하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돈 때문에 무엇인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니까 아프지 않은 건 아닐테지만, 힘들지 않은 건 아닐테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정지오는 그렇지 않다고, 그가 주준영은 가졌지만 자신은 갖지 못한 것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그녀의 그것보다 더 많다고, 아니, 더 아프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준영이 정지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구원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지오에게 녹내장이라는 시련이 찾아 온 순간부터 또 이 드라마 보기를 포기해야하나 생각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그가 주준영과 이별하고 혼자 눈물을 삼키던 장면보다, 그가 잘 보이지 않는 한 쪽 눈을 자꾸만 깜박거리는 모습에 더 심장이 쿵쾅거렸고, 눈물이 났다. 그에게서 연출을, 드라마를 앗아가는 건 주준영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시련이라고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지오가 다시 주준영을 찾아가 만나고 두 사람이 행복한 모습으로 엔딩을 장식한 드라마를 다 보고도, 여전히 두 사람의 사랑이 정지오의 현실을 구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어깨에 얹힌 삶의 무게는 사랑으로도, 친구의 연민으로도, 동료의 의리와 믿음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까. 물론, 위로하고 위로받고, 그로 인해 다시 그 무게를 짊어지고 일어설 수는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일뿐.

그럼에도 나는 또 바란다. 언젠가 <그들이 사는 세상>을  다시 볼 때는 정지오 말고, 다른 이들을 더 볼 수 있기를. 주준영을, 손규호를, 윤영을, 이서우를, 미친 양언니를, 좀 더 많이 아파할 수 있기를 말이다. 아마도 정지오가 덜 아픈 순간이 오면,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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