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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어야

jyoje 2010. 8. 17. 14:46

어제 잠들기 직전 불현듯 故 최진실 씨를 떠올렸다. 예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촬영 현장에 취재를 갔을 때 보았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아무런 맥락도 없이 문득 떠올랐다. 그 날 입고 있는 개나리색 가디건과 잠자리 안경, 손에 들고 있던 대본, 그리고 의자에 파묻힌 왜소한 몸, 이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떠올라 스스로도 '왜지?' 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아마도, 요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최근 故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릴 때가 많았다. 길 가다, 인터넷을 하다, 또는 뉴스를 보다 문득 떠오르곤 했다.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도, 결론은 늘 하나였다. '그래도, 살지 그랬어'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했다. 이십대의 많은 시간 동안 나는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꼭 목을 매려고 시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 살아내는 것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있다고, 그런 순간들이 있다고 느끼며 살아왔으니까. 저 멀리서 다가오는 지하철을 보며 멍- 해지는 그런 순간들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래도 살지 그랬어'라는 누군가들의 말이 안타까움이나 탄식이기 이전에, 무신경한 힐난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힘들어도, 그래도 사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된다. 그 사람이 있었던 200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 그 시절이 내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더 없이 어두운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을 지우고 싶진 않다. 그런데 요즘은 그 시절이 있었나 싶다. 내가 애써 지우려 해서가 아니라, 마치 그런 날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흐려진다. 완벽하게 좋은 시절이어서가 아니다. 내 안으로만 침잠했던 시절이라, 제대로 알고 기억하진 못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그 주위의 사람들, 그들이 이끌어 간 세상이 완벽하게 옳고 아름다웠다고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잊혀져도, 사라져도 될 만큼 하찮은 시간이 아니었던 것 만큼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무현은 지금 이 세상에 없다. 그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를 이야기하고, 그가 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지만, 당사자인 노무현이 없다. 물론, 모든 것을 끌어 안고 바위 위에서 몸을 날린 그 분의 심정을 전혀 모르겠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살아 있어 주었더라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모욕을 당하고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가족의 안위를 지킬 수 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버텨주었더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이 가시질 않는다. 잘못했으면 끝까지 용서를 빌고, 억울하면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면서 이 세상에 살아 남아, 주변인들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살아있는 육신과 육성을 통해 이야기해주었으면 하는.

단 한 번도 정치인으로서의 그를 맹목적으로 지지한 적이 없었던 나이지만,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가졌던 꿈과 한계에 공감하고 동정했기 때문에, 그가 있었던 이 나라의 한 시절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까 두려운 마음에, 이미 죽은 그를 두고 이런 덧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안타까워지면서, 나도 나이가 드는구나 싶다. 물론, 이 세상이 모든 오욕을 견디면서도 살아남아야 할 만큼 가치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구나 싶다. 살아있지 않으면 실수를, 실패를 회복할 수 없다. 무언가를 '다시' 한다는 건 오로지 산 사람들에게만 허락된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지금 내가 살아있는 이 순간을 충실히 살고 있느냐, 실수나 실패를 회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다시' 노력하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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