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이동진은 김태훈의 책 <랜덤워크>의 추천사에 ‘거침없되 공격적이지 않고 경쾌하되 가볍지 않다’고 김태훈을 평했다. 김태훈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진의 이 평가가 그에 대한 가장 적확한 표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당황하실 때도 있나요?”라고 묻게 될 만큼, 김태훈은 막힘없이 말한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는 말들은 물론 인터뷰 질문에 대해서도 주저 없이 답을 내놓는다. 단순히 ‘달변가’ 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쉬운 평가다. 수학 문제집이고 영어 사전이고 다 팔아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던 고등학생 시절을 거쳐, 스스로가 가엾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뜨겁게 청춘을 던져 열혈 운동권 학생으로 대학 시절을 살아냈던 그는, 지금도 코브라와 살모사의 맹독이 어떻게 다른지 따위에 흥미를 느끼는 독창적인 어른으로 살고 있다. 그리하여 이런 삶에서 파생된 지식과 지혜가 멀티플레이어로서의 그를 든든하게 지탱하는 받침돌이라고 할 수 있다.
전경린의 소설 <내 생애 하루뿐인 특별한 날>에는 ‘강하다는 건 이를 악물고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다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사는 김태훈에게 어울리는 문장이다.
최근 TV에서 더 자주 뵙는 것 같은데 일주일 스케줄이 대략 어느 정도인가요?
MBC 라디오에서 <K의 즐거운 사생활> DJ를 하고 있고, SBS <접속! 무비월드>, <금요일엔 수다다>, 스토리온 <100인의 선택>, MBN <황금알>, <인생고민 해결 SHOW 신세계>까지 방송을 한 여섯 개 하고 있나요? 그리고 9월부터는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복학해요. 창작문학과에서 소설이랑 희곡 전공하고 있는데 졸업하려면 작품도 써야 하네요. 선생님들이 공부를 좀 더 하라고 하시는데 힘들어서 못 하겠어요. 지금 제 나이가 마흔 다섯인데 만약 박사 학위를 딴다고 생각하면 빨리 해야 오십이잖아요. 전 놀고 싶어요, 공부하기 싫어. (웃음) 저한테 박사 학위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대학원도 석사 학위가 필요해서 갔다기보다 공부가 필요해서 간 거니까요. 지금도 문제긴 하지만 대학원에 간 즈음에 글이 잘 안 써졌어요. 제 글이 스스로 재미가 없어지면서 위기의식을 느끼던 차에 하일지 선생님을 만났죠. 저를 예쁘게 봐주셔서 공부하러 오라고 해서 갔더니 동덕여대더라고. (웃음) 여대에 남자도 갈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방송 활동이 많아지면서 원고 청탁을 거절할 때도 있을 것 같은데,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신지요?
최근에는 글을 많이 못 쓰고 있습니다만 결국 돌아가야 할 고향 같은 곳이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죠. 수입 면에서 방송이 훨씬 유리한 장르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팝 칼럼니스트라고 하는 건 제가 규정한 정체성이에요. 음악 듣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해요. 지겹기만 했다면 막혔을 때 털어버렸겠죠. 좋아하는 건데 잘 되지 않으니까 괴로운 거죠.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정말 극단적인, 학교에 간다는 선택을 한 거죠. 제가 대학교를 20년 만에 졸업했거든요. 그런 제가 자발적으로 다시 제도권에 들어간 거니까요.
바쁜 일정이 상당히 버거울 것 같은데 어떻게 버티세요?
힘든데 몰아붙이는 상황이에요. 병원에도 들락날락 하고 두 번 쓰러졌어요. 그래서 휴학을 했던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참 이율배반적인 게 늘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얘기하면서도 그게 잘 안 돼요.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는 성격이니까.
스트레스도 많이 쌓였겠네요.
최근 한 2년 동안 짜증이 엄청나게 많아졌어요. 그 이유가 첫 번째는 체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스쿠버다이빙도 십 년 넘게 하고 암벽도 타고 복싱도 하고 그랬는데 최근 운동을 쉬었죠. 두 번째는 놀지 못 해서예요. 전 제 정체성의 밑바닥이 ‘딴따라’ 라고 생각해요. 원래 노는 놈인데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술 먹고 깔깔 거리고 음악 듣고 놀아야 하는데, 산으로 바다로 돌아다녀야 하는데 이건 좀 너무 심하다 싶어서, 최근엔 짬짬이 놀아요.
그런 분이 최근 몇 년 동안 너무 혹사하는 거 아닌가요? 종편 개국 이후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은 패널 중 한 사람이잖아요.
종편에서 방송을 하면서 새삼 깨닫는 건데 종편의 주 시청 층은 오십대, 육십대 거든요, 예전엔 그냥 무시하기만 했던 기성세대에 저 스스로 편입이 되면서 ‘과연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세상을 살았을까’ 하는 부분을 새삼 생각해요. <신세계>나 <황금알>이 유쾌한 건 논쟁이 있기 때문이죠.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그냥 받아들이지 않아요. 제가 수십 번도 넘게 인용을 했었는데,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수잔 손탁이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라고 했어요. 이게 제 삶의 슬로건이에요. <황금알>에서 전문가라고 하는 의사들끼리 싸우잖아요. 저는 그게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해요. 의학이라는 것도 확정적 진실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롭게 알려지는 사실들이 있는 거니까.
종편 출연에 망설임은 없었나요?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죠. 저도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니까요. 가장 정치적 색깔이 없다고 하는 MBN을 선택한 것도 그런 부분인 거겠죠. 누군가가 종편 출연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제가 한 말은 ‘미안하다’였어요. 기획사에 소속된 한 사람으로서 계약을 100% 내 선택만으로 할 순 없는 부분도 있다, 이해해달라고 얘기했어요. 만약 세상 사람들이 얘기하듯 제 실수라면 실수라고 인정하겠다는 입장이죠. 하지만 이 문제는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 안 할 수 없기가 힘든 문제예요. 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방송을 전적인 생업으로 삼고 있는 탤런트나 영화배우, 개그맨에게까지 종편 출연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 건 문제가 있다는 얘기예요. 연예인이 SNS에서 이른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호불호가 엄청나게 갈리는데, 대체적으로 싫어해요. ‘연기나 해라, 개그나 해라, 니들이 뭔데 정치에 관여 하냐’고. 그렇다면 그들은 정치적으로 배제된 사람이라는 건데 막상 종편에 출연했을 때 그들에게 쏟아진 비난이라는 게 엄청났어요. 이건 그들을 정치적인 인간으로 본 거죠.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논리가 있는데 여기서 일관성이 느껴지지 않아요. 과연 종편에서 일을 하면 종편의 부역자가 되는 것이냐, 그렇게 따지면 여타의 케이블 방송은 거대 자본이나 언론사가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당파성이나 계급성을 담보하지 않는 시대의 논쟁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평가에 대해 ‘그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당파성이나 계급성이 있는 글도 꽤 많이 썼어요. 하지만 그런 글이 아닌 다른 글이 있으면 그걸로 꼬투리가 잡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참 재미있는 게 뭐냐면 TV에 등장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의 이미지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거예요. 더 재미있는 건 전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이 없어요. 전 누구처럼 되고 싶지도 않고 누구처럼 살고 싶지도 않아요. 전 ‘내가 원하는 걸 한다. 내 상식과 도덕성에서 봤을 때 크게 잘못한 게 없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주의예요. 예전에 제 책 <랜덤워크>에 이동진 기자가 써 준 ‘김태훈이라는 사람은 세상의 속도가 어떻든 관심 없다. 그는 삶의 급류 속에서도 자신만의 리듬으로 유영한다’라는 서평을 참 좋아해요. 다만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봤을 때, 제가 지면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대해서 써야 할 것의 색깔이 맞으면 쓰는 거죠.
이동진 씨가 ‘거침없되 공격적이지 않고 경쾌하되 가볍지 않다’는 평가도 하셨는데, 이 점이 방송에서 당신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전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애정부터 회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SNS에서 가장 많이 목격하는 게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거예요. 어느 순간이 되면 그들의 행동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비난이 되어 버리고 인격모독으로 번지는데, 우리가 인간성을 그렇게 버리면서까지 수호해야 할 체제라는 게 뭐예요? 자본주의가 계속 삭막해 지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기 때문이란 말이에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예요. 만약 어떤 사람이 영화를 만들고 음악을 만들었는데 좀 못 만들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할 순 없잖아요.
<100인의 선택> 등에서 볼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이해와 입장의 근저에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단순히 방송의 하나로만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 내가 세상의 절반에 대해서 이렇게 무지했나’라는 걸 깨달아요. 사실 저는 69년생이고 과거의 마초적 교육을 받은 사람이에요. 아무리 합리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 교육의 잔재들이 남아 있어서 꼴통마초 같은 느낌을 드러낼 때가 있어요. <이승연의 100인의 여자>부터 <100인의 선택>을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는 게 ‘내가 세상의 절반에 대해서 참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구나, 우리 세대가 가진 편견이 여자들을 얼마나 많이 힘들게 했을까’ 하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일반적인 대한민국 남자 같지 않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물론 방송을 통해 과장된 이미지도 있겠지만, 스스로는 자신이 대한민국 평균 남자로부터 얼마나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다른 남자들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어요. (웃음) 저는 개인적인 천성과 여러 가지 삶의 조건들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남들하고 비슷하게 살아본 적이도 없고, 별로 비교라는 걸 하면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고등학생 때는 엄청난 문제아였고 대학교에 가서는 남들이 다 생각하는 취업이라는 게 머릿속에 있지도 않았어요. 토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이력서 세 장 써서 세 군데 회사를 다녔으니까. 서른다섯에 프리랜서가 되었고 결혼도 늦었고. 물론 남들과 다르다는 얘기를 듣는 게 행복해요. 스스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삶의 행복을 45평짜리 아파트나 3000cc짜리 자동차에 두지 않아요. 그런데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들은 그걸 못 하죠. 왜냐하면 겁이 나는 거예요. 하지만 전 그것도 사회가 만들어낸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게,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면 인생이 불안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삶이라는 건 늘 불안한 것이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걸 그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건 헛수고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인데 이걸 직업으로 가지면 불안하니 안 불안한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는, 좋아하는 걸 하면서 그로 인해 오는 불안과 계속해서 싸우면서 사는 거죠.
스스로 그런 족쇄를 채우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결혼이잖아요. 그래서 당신의 결혼 소식에 놀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전 독신주의라고 단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이 절 독신주의자로 알고 있었더군요. 전 무슨 ‘주의’라는 건 삼십대 초반에 다 버렸어요. ‘~주의자’라는 건 정말 투철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전 그렇게 투철한 인간이 아니에요. 전 십대 때부터 어떤 여자랑 결혼하면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던 사람이고 연애를 할 때마다 결혼을 생각해봤어요. 그러니까 독신주의자일 수가 없는데 나이를 먹고도 결혼을 안 하고 있고 방송에서 몇 마디 얘기한 걸로 유추해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절 독신주의자로 만들고는 또 자기들끼리 배신감을 느끼더군요. 좀 웃겨요. 그리고 우스갯소리로 자주 하는 말인데 제 부인은 지금까지 만난 여자 중에 저한테 가장 관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저의 특징이나 독립성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절 내버려둬요.
‘대한민국 유부남 중에서 가장 자유롭게 사는 사람인데도 ‘불편하다. 삶이 불편해지니까 여러 가지 사유를 하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어떤 사유를 하시나요?
결혼해서 제일 큰 변화가 뭐냐고 묻기에 ‘불편함’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너무 너무 불편하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자유를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자유로운 사람들은 어른이 되진 않아요. 아무 것도 책임질 것이 없을 때는 사유가 거의 없죠. 모든 것이 즐거우니까. 인간이 고민에 빠지게 되는 건 딜레마가 생겼을 땐데 결혼은 인생의 딜레마예요. 끊임없이 생각을 해봐야 하니 아, 내가 철학적 인간이 돼가는 구나 싶죠. (웃음)
방송 출연 요청이나 원고 청탁이 어느 순간 끊길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시나요?
전 회사에서 두 번 잘렸어요. 처음 잘렸을 때가 삼십대 초반이었는데 한 6개월 놀면서 별 별 아르바이트를 다 했죠. 그 때 굉장히 무기력했어요. 누가 불러주길 기다려야 하니까. 그 때 결심한 게 다시는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겠다는 거였어요. 방송이든 글이든 최악의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둬요. 대학원에 가게 된 것도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오래 하기 위한 연장선이고 친구들과 사업체를 만든 것도 남들이 안 불러 줬을 때 혼자서라도 자립적으로 일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겠다 싶어서예요. 다음 달부터는 바텐더 교육을 받기로 했는데, ‘나이 들어서 세계 어디에 가서라도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했더니 이게 있더라구요. 나중에 아무도 안 불러주면 홍콩이나 베트남 같은 데 가서 한 세 평짜리 조그만 바에서 술이나 말아야지 생각해요.
방송을 통해 보면 항상 능수능란한 것 같아요. 살면서 당황하는 순간은 언젠가요?
예전에 암벽 등반을 배울 때 인수봉에 올라갔었는데 직벽으로 밑으로 떨어지니까 공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더군요.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도 동해 양양에 갔다가 조류에 휩쓸려서 두 번 죽을 뻔 했어요. 운동권일 때 시위현장에서 별별 일을 겪었고, 그런 경험들을 겪으며 살아와서 그런지 몰라도 잘 당황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앞으로 더 크게 당황할 일이 생기면 안 돼요. 친구들하고 이런 이야기를 해요. 로맨틱 코미디를 꿈꿨는데 인생이 어쩜 이렇게 하드코어냐, 발라드 좀 불러보려고 했는데 펑크야!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술술 얘기할 수 있는 건 많이 그리고 넓게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때때로 아는 것이 30%인데 100%인 것처럼 말할 때도 있나요?
그런 짓은 잘 못 해요.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틀리면 틀렸다고 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전 제가 박학다식하다고 생각은 안 해요. 다만 저는 늘 제도권 밖에 있었어요. 전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공부는 안 했어요. 그냥 혼자 영화 보고 음악 듣고 보고 싶은 책 봤어요. 제가 박학다식 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회가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서만 맴돌지 거기서 빠져나온 경험이 없는 거예요. 음악 듣는 친구나 영화 보는 친구한테 물어보면 무지 많이 듣고 본다는데, 실제로 보면 만날 똑같은 장르만 듣고 영화도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만 봐요. 이건 많이 듣는 거 아니에요. 많이 라는 건 늘 새로운 걸 접하는 거예요. 그래야 자극을 받을 거 아니에요.
지금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뮤지컬이요. 많이 봐요. 지금 공부하는 것 중 하나가 뮤지컬이나 연극의 희곡 작업이에요. 창작을 해서 공연을 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이를테면, 예술 감독 같은 걸 해보고 싶어요. 어떤 작품이 만들어질 때 그것을 전체적으로 슈퍼바이징 해주는 역할이죠. 그리고 여전히 글이죠. 대학원에 갔을 때 선생님이 왜 여기에 왔냐고 물으시기에 ‘죽기 전에 멋진 글을 한 번 써보고 싶어요’라고 했어요. 연극의 대본일 수도 있고 한 편의 소설일 수도 있고 정말 명문의 칼럼일 수도 있고, 제가 제 글을 보면서 ‘아, 정말 잘 썼다 하는 느낌’을 받고 싶어요.